안녕하세요.
라이프라의 대표 육선영입니다.
저는 서른일곱에 시어머니를 모시기 시작했습니다.
파킨슨병이 오셨고, 마지막에는 혼자 몸을 가누시지 못했습니다.
제가 하던 일은 그렇게 끝이 났고,
'간병'이라는 이름이 제 직업이 되었습니다.
그때는 몰랐습니다. 그 길이 16년이 될 줄은.
시어머니를 보내드리고,
저는 요양시설로 출근했습니다.
한 분 한 분, 다른 분이 계셨습니다.
어떤 어르신은 딸 이름을 부르며 우셨고,
어떤 어르신은 끝까지 혼자 드시려 하셨고,
어떤 어르신은 아무 말씀도 없이,
저의 손만 오래 잡고 계셨습니다.
저는 그분들의 마지막 시간을 보았습니다.
그리고 그 시간을 지키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.
간병인 선생님들과 탈의실에서 밥을 먹으며
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.
"십 년을 해도 이모님이라고만 불려요."
"자격증이 있어도, 없어도, 돈이 같아요."
"아이들에게는 제 직업을 말하기 어려워요."
저는 그 말들을 오래 담아두었습니다.
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,
그냥 들어드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.
작년 봄,
딸이 저에게 물었습니다.
"엄마, 16년 간병하면서
좋았던 거, 안 좋았던 거
세 가지씩만 말해주세요."
저는 그날 밤 두 시까지 말했습니다.
라이프라는 그날의 이야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.
제가 16년간 만난 선생님들,
제가 돌봐드린 어르신들,
그 곁을 지키느라 잠 못 드셨던 가족분들.
그 모든 분들께 제가 드리고 싶었던 것은
대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.
이름을 불러드리는 일.
노고를 숫자로 남겨드리는 일.
다음 분께 잘 전달해드리는 일.
저는 현장에 16년이 있었습니다.
딸은 기술에 젊음이 있습니다.
저희 둘이 못 할 것은 없다고 믿습니다.
제가 드릴 수 있는 약속은 하나입니다.
라이프라에 계신 선생님들께
제가 그동안 받고 싶었던 대우를 해드리겠습니다.
그리고 저희 어머니께 해드리지 못한 것들을,
지금 그 자리에 계신 어르신들께
대신 해드리겠습니다.
저는 늦게 출근하는 사람입니다.
예순이 가까워져서야 이 일을 시작합니다.
늦었지만,
늦어서 더 잘 아는 것이 있다고 믿습니다.
함께해주세요.